서화담,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일컬어졌던 황진이(黃眞伊, 1500년대 초)미모와 시재

가 뛰어난 기생으로 거문고도 잘 탔고 노래도 매우 잘한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황진이는 많은 일화로 지금껏 동경받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서화담과의 일화, 지족선사와의 일

화, 황진이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의 일화 등 수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황진이는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도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노래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소설로는

박종화, 안수길, 유주현, 정비석, 최인호, 김탁환, 전경린이 집필되었고 북한에서도 홍석중이 황진이를

썼으며 시인으로는 구상 시인과, 문정희 시인도 황진이를 노래하였습니다.


이처럼 황진이의 뛰어난 미모와 문학은 지금시대의 문인들 사이에 큰 관심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입

니다. 또한 영화로도 1957년 도금봉 주연의 황진이,강숙희, 김지미, 장미희, 당대 최고의 여성스타들이

황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채널A천일야사편에서도 황진이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황진이는 어머니가 기생출신

으로 어머니는 당대 최고의 기생이며 가야금 연주자였던 진현금이라는 사람으로 한 양반의 첩으로 들

어가 황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본처의 구박으로 결국 15년만에 쫒겨나는 기구한 운명으로 살게

됩니다. 이때 부터 황진이는 어머니의 반대를 물리치고 기생이 되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합니다.




 


황진이역을 하였던 배우 장미희씨는 황진이에 대해"어린 황진이가 상사병으로 죽은 갖바치의 주검앞에

섰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새로운 시작의 순간에 선 여자 아이가 삶의 종결인 죽음에 마주했을 때 도망

가거나 거부하는 대신, 시대와 관습에 반항했다. 아름답고 우아한 반항의 힘으로 해방의 열쇠를 쥔 사람

이 황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설가 김탁환씨는 "박사 과정 때 조선 한시를 많이 봤는데 황진이의 한시 7수와 시조들은 작법과

내용에서 완벽했다. 그저 감정으로 쓴 게 아니라 당시(唐詩), 송시(宋詩)를 다 익힌 뒤 스스로의 운율

과 표현을 만들어낸 수준이다. 황진이는 서경덕 문하에서 허균의 아버지 허엽, 토정 이지함 등과

어울린 당대 최고 엘리트 문인이었다"고 평했습니다.


잘 있거라 황진이(박두환 작사/나화랑 작곡 1957년) 조민우 원곡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머나먼 황천길을

서화담 그리운 님 저승 간들 잊을쏘냐 섬섬옥수 고운 손이 묵화치고 글을 짓던 황진이 내 사랑아


사랑이란 청춘의 향기이련난 홀로 맺는 그 향기 가엾고 애달퍼라

내 사랑 그대라면 모란처럼 피련만은 모른 채 얄미운 것 사랑인가 하노라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살아생전 맺지 못할 기구한 운명이라

꽃피고 새가 울면 님의 넋도 살아나서 네 무덤에 꽃은 피네 눈 감은들 잊을쏘냐 황진이 내 사랑아


조민우-잘 있거라 황진이 1957


나훈아 주현미-잘있거라 황진이


박상철-황진이





복면가왕-복면캠프(최민용)-영영


'배철수의 복면캠프'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27일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에서

'뜨거운심장 양철로봇'에 도전하는 새 복면캠프 8인의 듀엣곡 대결을 펼쳤습니다.


최민용은 '배철수의 복면캠프'라는 이름으로 출연해서 '역도요정 김복면'과 1라운드

대결을 펼쳤는데 아쉽게 탈락했습니다. 최민용은 탈락후 나훈아의 '영영'을 부르며

가면을 벗었습니다.


복면캠프(최민용)


연기자 최민용은 지난 2007년 종영한 MBC '거침없이 하이킥'이후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잠시

방송활동을 중단한바 있습니다.


최민용은 1996년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KBS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비단향꽃무>

<논스톱3>,<야인시대><혼자가 아니야><거침없이 하이킥><영화의발견>

영화<창피해>등에 출연하였습니다.



김복면&복면캠프(최민용)-라구요


최민용은 방송에 10년만의 출연이었습니다. '복면가왕'에서 최민용은 "기회를 주신다면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라고 밝혀 방송복귀를 선언하였습니다.


한편 최민용은 자신을 "잊혀진 연예인 2위, 근황의 아이콘"이라고 소개하였으며

지난 10년동안에 여러가지를 경험하였다고 밝히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나훈아 출처:유튜브


나훈아 히트곡모음: 갈무리,물레방아 도는데,고향역,머나먼 고향,사랑


남자다운 중후한 저음의 매력이 넘치는 나훈아의 히트곡들입니다.

나훈아는 1966년 서라벌예고 2학년때에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를 하였습니다.



1968년에는 당대 히트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탑가수대열에 올랐습니다.

특유의 간드러지며 꺽어지는 목소리가 매력인 나훈아는 1970년대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최고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1976년에는 전설의 영화배우 '김지미'씨와의 결혼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훈아와 김지미는 신혼집에 거주하며 방송출연을 하지않고 있다가 1981년에

'대동강 편지'로 화려한 복귀를 하며 계속해서 '울긴 왜울어'등을 히트시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래갈것 같았던 김지미와의 결혼생활은 깨지고

이혼을 하게되었습니다. 


나훈아-구글이미지


한편 나훈아는 최근에 전부인과 5년간 이혼 소송 끝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법원은 나훈아는 이혼 위자료 12억을 지급하라고 선고를 내렸습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가사1단독 최상수 판사는 31일 나훈아의 부인 정 씨가 나훈아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에 대해 "양측은 이혼하라"선고했습니다


이혼소송이 제기된 이유는 나훈아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자녀 부양비도 제대로 주지

않아다는 이유로 2011년 8월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 분할 소송을 냈습니다.

당시 나훈아는 정씨와 혼인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