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스톱4에서 '오서방'이라는 별명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 오승은이 9월10일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9회에 출연하여 고단했던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오승은은 본명이 안진옥으로 1979년생이며 2000년 SBS 시트콤<골뱅이>를 통해 데뷔하였습니다. 영화 <두사부일체>에서는 여주인공 이윤주 역으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출연한 영화는 진실게임, 두사부일체, 하늘정원, 천녁학에 출연하였으며 출연 드라마는 골뱅이, 아름다운 날들, 명랑소녀 성공기, 눈사람, 논스톱4, 김약국의 딸들, 큰 언니, 지성이면 감천등에 출연하였습니다.





가창력도 뛰어니 복면가왕에도 출연하였으며 예능프로 무한걸스에도 출연한 바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오승은은 방송생활 8년 만에 돌연 결혼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2008년 전남편인 사업가 박인규와 결혼했지만 2014년에 성경차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하였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딸 2명이 있습니다.

결혼 6년 만에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고 그녀는 두 딸 채은과 리나와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경상북도 경산시로 향하였습니다. 3년 전부터 고향인 경북 경산에 살고 있는 그녀는 두 딸을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각박하지 않은 곳에서 키우고 싶어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오승은은 카페를 운영하며 바리스타로 살고 있습니다. 경북 경산시 옥산동 799-5에 위치한 배우 오승은의 카페는 경산 래드카페티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지은 2층 집 중 2층은 딸들과의 생활 공간이고 1층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손님들도 많은 편이어서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몸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24시간을 혹사한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식물인간처럼 열흘을 앓아 누웠다고 합니다. 오승은은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쌓아두고 살지 말자 그때그때 분출하며 살자"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찾은 방법은 노래였다고 합니다. 무작정 노래방에서 혼자 네 댓 시간씩 노래부르기를 수 일,,심지어는 노래방에서 만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는가 하면 음반에 뮤직비디오까지 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달에 한번씩 친구들과 밴드공연을 하고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등 좋은일도 했다고 합니다.

오승은이 발표한 음반앨범은 '친구', '시절' 등 발라드 두 곡과 댄스곡 '여름바다'까지 3곡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오승은 평생 도배일로 마련한 아파트를 팔아 딸의 서울 생활을 지지해주었던 부모님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인터뷰에서 연극영화과에 합격이 됐는데 서울에서 생활을 하자니 숙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엄마가 살던 집을 팔아 허름한 집으로 이사가고 자신에게 집을 얻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엄마아빠는 저 때문에 산 밑에 추우면 파카입고 이불 덮어쓰고 자야 될 정도로 웃풍이 심한 집으로 이사갔다며 안타까워 하였습니다.




이제 19년만에 엄마와 찾아간 산중턱의 옛집은 가족들의 희생과 사랑을 다시 떠오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여섯 살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 부모님 대신 밥을 차려주고 화장실도 함께 가주던 하나뿐인 오빠를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오승은은 최근 활동을 재개하면서 서울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딸들과 생 이별식을 치르는게 힘들지만 자신을 기억해주는 팬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고 합니다. 


최근 오승은은 배우에서 가수로 변신하였는데요. 지난해 오승은 '오즈'라는 프로젝트 그룹(오승은×영준, 상동)을 결성, 제작한 음반을 발표하였습니다. 타이틀곡은 '친구'이며 수록곡은 '친구', '시절', '여름바다'로 오승은이 전곡을 자가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tvN예능 '수상한 가수'에서 '사비'라는 이름으로 복제 가수에 도전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수상한 가수'에서 화제가 된 오승은은 과거 배슬기, 추소영과 함께 배우들로 이루어진 그룹 '더 빨강'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당시 배우들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이름표로 유명했던 '더 빨강'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습니다.


7전8기의 개그맨 프로골퍼 최홍림이 9월3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8회에 출연하여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개그맨 최홍림은 1987년 제1회 대학 개그제에서 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개그계에 데뷔하였습니다.


그가 출연한 프로는 <꼭지와 깍지>, <청춘교실>등이었는데 쏟아지는 후배 개그맨들로 인해 최홍림은 차츰 설 자리를 잃고 잊어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방송을 계속해서 하고 싶었지만 불러주는 데가 없어 무척이나 속이 상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나중엔 우울증까지 왔다고 고백했는데요.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가족들이 있는 미국행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날 골프방송을 보다가 최홍림은 그 순간 골프를 통해 문득 내가 골프를 잘 치게 되면 골프전문방송 쪽으로 MC나 사회자로 방송을 다시 할 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들어 그때부터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날로 최홍림은 미국에서 그렇게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2002년도에는 '개그맨 출신 프로골프'가 됐습니다. 최홍림은 골프에 대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하여도 재능이 부족하면 힘들텐데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2010년에는 14년만에 꿈에 그리던 방송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 33년 만에 처음 맞이한 전성기로 인지도를 쌓고 자신이 하던 사업도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말기 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신부전증이란 신부전 또는 콩팥기능상실은 콩팥이 망가져 생기는 병으로 만성신부전의 경우는 투석을 하거나 신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게 됩니다. 급성 신부전은 신우신염, 신장염 등 세균성 감염증이나, 외부 약물 섭취, 독그물에 의한 신장피해, 혈액량 부족(극심한 탈수)등의 이유로 일어나곤 합니다.







최홍림은 3년 전 처음 진단을 받을 땐 관리만 잘하면 10년도 쓸 수 있다던 신장이 3년 만에 8%로 악화된 것입니다. 신부전증은 어떤 질병보다 관리가 중요한데에도 불구하고 기러기 아빠로 고군분투 하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병을 키워온 것입니다.


최홍림은 지난 3년 동안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줄 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방송국과 골프장을 밤낮없이 뛰어 다녔습니다. 챙겨주는 가족이 없다보니 끼니를 거르는 날이 일쑤이고 결국 몸은 점점 망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빨리 수술을 하라고 하지만 만약 수술을 하면 방송은 끝이다라는 생각에 수술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한테 훌륭한 남편이 되고 싶고 딸한테도 열심히 방송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방송하다 쓰러지면 수술을 할까 당분간은 수술을 안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고백했습니다.


3년 전 최홍림의 아내는 한식당 사업과 딸의 학업 때문에 모녀는 함께 중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최홍림의 아내 도경숙씨는 모든 게 본인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 딸의 방학을 맞아 고국에 잠시 딸과 함께 귀국하였는데, 최홍림은 그새 몸무게가 5kg이나 빠져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픈 남편을 두고 다시 중국으로 가야하는 아내는 남편의 끼니 걱정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딸 또한 혼자 남을 아빠 걱정에 아빠 얼굴만 봐도 눈물이 흐릅니다.


최홍림은 지난 2월에 14% 신장기능이 남았다던 검사결과가 최근 진행된 검사에서는 8% 남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6개월 만에 무려 6%나 떨어진 것입니다. 이제 투석이나 이식수술로 신장기능을 대신해야할 상황이 온것입니다.


그런던 중 4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형 최길림 씨가 신장을 공여해주겠다며 낱났습니다. 그러나 최홍림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최홍림의 형은 지독히도 가족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돈을 주지 않으면 애꿎은 홍림과 누나들을 두들겨 패곤 했으며 심지어 돈을 주지 않는다고 집에 불을 지르고 집문서를 들고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최홍림에게 형이란 존재는 원수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처가 씻어질 수 있는 것은 형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형이 홍림이에게 찾아와 그동안해준 게 없으니 신장이라도 주고 싶다며 동생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신장이식 수술이었지만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신장을 주겠다고 한 형이 고마우면서도 지난 날을 생각하면 울컥울컥 분노가 치솟습니다. 최홍림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장이 나빠진 것은 부모님이 형과의 화해를 바라는 뜻으로 부모님이 신장을 나쁘게 한 건가라는 생각도 가끔씩 든다고 합니다.


과연 최홍림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딛고 형과 화해하며 용서할 수 있을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 한다고 합니다.

8월20일 MBC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6회에서는 '내 인생,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상아편이 방송된다고 합니다. 세 번째 이혼을 고백한 이상아는 1984년 13살의 나이에 KBS 드라마 <TV문학관 -산사에 서다>를 통해 데뷔하였습니다. 이후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 <마지막 승부>, <아무도 못말려>등에 출연하며 청순한 외모로 김혜수, 하희라, 이미연 등과 함께 '책받침 여신'으로 떠올랐습니다.


1980년대 CF만 150편을 찍는 등 일약 하이틴 스타로 부상한 이상아는 당시 남자 중고생들의 3대 여신이었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의 대항마로 이상아와 이미연이 경쟁을 벌였습니다.






1985년 영화 '길소뜸'에서 이상아는 당시 중2었는데 전라노출과 키스신으로 논란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길소뜸은 임권택 감독 작품으로 이상아는 김지미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수위가 높기 때문에 어머니가 못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 마지막 촬영 때 '돈 많으면 이때까지 찍은 필름 값 다물고 집에 가라'는 요구에 결국 전라 노출씬을 찍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영화감독의 강압적인 촬영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예술 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김기덕 감독은 여배우의 빰을 때리는 등 폭행하고 대본에도 없던 베드신을 강요한 혐의로 고소 당한 데 이어, 모델 출신 배우 이영진 씨는 자신도 영화 촬영 때 합의 안 된 노출 장면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하여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원조 국민 첫사랑 이상아는 1972년생으로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깜찍한 매력으로 드라마, 영화, 500여 편의 CF에 출연했던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상아의 전성기는 26살 어린 나이에 선택한 결혼으로 멈춰버리고, 세 번 이혼한 여자라는 수식어까지 붙으며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이상아는 1997년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을 하기 전 하이틴스타에서 성인 연기자로 확실히 자리잡아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김한석과의 이혼과정에서 악성루머가 돌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2001년 두번째 결혼을 했으나 19개월만에 합의 이혼했고, 2009년에는 세번째 결혼했으나 역시 이혼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세 번의 이혼으로 이상아는 공황장애에 빠지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멀어졌다고 합니다.


이상아는 숱한 방황과 아픔 끝에 길었던 공백을 깨고 원조 하이틴 스타에서 아줌마 연기자로 브라운관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상아는 최근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데 이상아는 '2017니카코리아 스타워즈'대회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3월달에는 TV조선 '엄마가 뭐길래'에 딸인 윤서진과 동반출연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이상아는 불러주는 곳만 있다면 어디든 물불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가족 때문이라고 합니다. 딸과 어머니의 생계를 위해 이상아는 오늘도 오뚝이 처럼 일어서서 씩씩하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상아는 거듭된 이혼 후 딸 서진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서진이는 사춘기를 겪고있다고 합니다. 모녀 삼대의 동거 생활은 매일 티격태격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어린시절 이상아의 매니저 역활을 했던 엄마 박명숙씨와 딸 윤서진과 이상아는 매일 전재을 치르며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때로는 서로에게 친구 같고, 남편같고 아버지로 의지하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합니다.


눈물로 얼룩졌던 과거만큼 여전히 힘든 날들의 연속이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이상아의 방식이라고 합니다. 최근 새로운 드라마의 캐스팅 물망에 오른 이상아는 비록 조연급 역활이지만 지금은 주어지는 역활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8월13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5회 편에서는 방송인이자 제주에서 생활한복 브랜드 '허수경의 반함'을 운영하고 있는 방송인 허수경이 출연한다고 합니다. 허수경은 혼자 낳아 기른 딸이 벌써 11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허수경의 딸 허은수(태명  별이)는 정자 기증을 통해 낳은 딸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습니다. 허수경은 지난 두 번의 이혼을 겪은 후 지난 2007년 정자를 기증결혼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됀 바 있었습니다.






사람이 좋다에서 허수경은 두 번의 이혼 뒤에 만난 큰 나무 같은 남편을 최초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슬픔과 역경 속에서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방송인 허수경의 행복이야기로 꾸며집니다.


허수경의 딸 은서는 어두웠던 그녀의 삶을 비춰진 단 하나의 별이라고 하는데요. 허수경은 1989년 MBC 1기 공채 MC로 데뷔하여 싹싹하고 순발력 넘치는 진행으로 주목 받으며 당대 최고의 MC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MBC TV와 라디오에서 5개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은 물론 최초로 남성 MC와 비견되는 능력을 지닌 여성 MC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런던 중 그녀는 돌연 방송에서 모습을 감추었는데, 그 이유는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의 이혼으로 큰 상심을 겪었습니다.


이 후 허수경은 2008년 혼자 몸으로 딸 은서(태명 별이)를 낳게 되는데요. 그녀에게 은서는 살아야 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은서는 훌륭하게 잘 자라서 지난해 KBS2 TV 여유만만에서 허수경과 함께 출연하여 엄마가 150살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며 결혼해도 엄마랑 같이 살 거라고 고백해 허수경의 눈물샘을 자극하였습니다.







이토록 잦은 풍파를 겪었던 허수경은 은서를 키우기 위해 제주도에서의 삶을 택하였는데, 어느덧 12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허수경은 방송 일로 인해 일주일 중 하루는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고 합니다. 이들 모녀는 금요일 단 하루 제주도를 비울 때 조차 서로를 그리워하는 못말리는 모녀라고 합니다.


뽀뽀 만 번은 기본,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산다는 닭살 모녀라고 합니다. 허수경은 딸 은서의 아기 때 용품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차곡차곡 모아 놓을 만큼 지극한 딸 사랑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허수경은 두 번의 결혼 실패 이후 만난 지금의 남편 해영은 큰 나무 같은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함께 산 지는 올해로 6년째라고 합니다. 지금은 행복한 결혼생활로 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 해영은 아내를 위해 감미로운 클라리넷 연주를 하고 발 마사지는 기본인 로맨틱한 남편이자 딸 은서에게도 한없이 다정한 아빠라고 합니다.


남편은 서울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낸지 오래라고 합니다. 덕분에 허수경은 항상 신혼 같다고 쑥스러운 듯 웃는 수경이지만 매끼니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합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면서 다시는 결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수경은 해영과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해영과 수경 둘을 이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은서였다고 합니다. 은서는 저 아저씨가 엄마랑 남자친구로 사귀어도 좋게다고 허수경한테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허수경은 아이가 '아빠'라고 불러볼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 것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행복한 늦깎이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허수경은 최근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합니다. 과로에 공황장애, 우울증 등 심리적 문제가 겹치면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홀로 묵묵히 버텨오던 그녀였지만 남편과 딸, 두 남동생 내외에게건강상 문제를 털어놓으며 엄마로서 약해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자진해서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병원에 도움을 받아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경은 삶에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생활 한복 디자이너로 제2의 도전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평소 한복을 좋아했던 허수경은 딸을 위해 한복을 만들고 싶어서 생활 한복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손님들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워 지금은 더 많은 이들에게 우리 한복의 편안함과 멋스러움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허수경은 '반함'이라는 철릭 생활 한복 브랜드를 론칭해서 한복을 판매하고 있으며 소품을 만드는 브랜드 '바탕'도 소박하게 오픈하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오밀조밀 만드는 걸 좋아했다는 허수경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다며 기분 좋게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수경의 퓨전한복 허수경의 반함매장은 제주 조천 스위스마을 112호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8월6일 방송되는 MBC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4회 편에선 존재의 이유를 불렀던 가수 김종환이 출연하여 가족의 사랑을 노래해준다고 합니다. 김종환은 올해로 가수 데뷔 34년차를 맞고 있는 중견가수인데요. 김종환은 그의 대표곡 존재의 이유, 사랑을 위하여 이 곡들로 98년 최고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며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을 섭렵하였습니다.


존재의 이유는 시청률 65%를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에 삽입이 되면서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 HOT, 젝스키스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김종환은 대한민국 누님들의 아이돌로 등극하며 누나 부대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김종환은 무대에서 좋은 곡을 진실 되게 부르는 것이 누나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합니다.






김종환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하는 가수인데요. 실제로 존재의 이유는 부부가 떨어져 살았던 가장 힘든 시기에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음악다방에서 DJ와 손님으로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추운 겨울 8시간 넘게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고, 돈이 없어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이불 한 채와 냄비 하나로 살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렵게 만련한 집은 빚보증으로 날아가고, 김종환은 가족과 6년간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의 노래 속 가사인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처럼 가족이 함께 할 날을 그리며 김종환은 노래에 전념했습니다.김종환이 스타가 된 후에는 소속사에서는 결혼을 밝히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김종환은 아내에게는 세상 부럽지 않은 로맨티시스트 남편이자 두 딸에겐 든든한 버팀목인 아빠로서 가족의 울타리가 되 준다고 합니다.


동료가수 노사연은 김종환에 대해 콘서트나 공연에 항상 같이 다녀 가족의 사랑이 대단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가장이라고 칭찬을 해줍니다.






김종환은 가수 리아킴의 아빠이기도 한데요. 리아킴은 예쁜 얼굴에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갖춘 아이돌 가수입니다.. 김종환의 딸 리아킴은 아버지의 이름보다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2년간 부녀관계를 숨기고 선후배 사이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평소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지 않는 그가 직접 곡을 주고 키운 미모의 후배 여가수와 같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방송 출연을 할 때마다 오해의 시선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아래, 초등학생이었던 리아킴은 재래시장과 버스 한복판에서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며 담력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 기획사에서 걸그룹 메인보컬 제의도 여러 번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의 길을 꿈꿔온 10년의 시간, 드디어 아버지가 작사 작곡한 '위대한 유산'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리아킴은 어느덧 6년차 가수가 됐다고 하는데요. 34년 차 선배인 아버지의 무대를 바라보며 그 당시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한다고 고백합니다. 


김종환과 그의 딸 리아킴은 최근 4년여 만에 앨범 '아내가 돼줄래', '내 남자니까'를 동시 발매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앗싸 호랑나비 김흥국이 7월30일 오전 8시에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3회편에 출연하여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이번 제목은 김흥국의 '아싸 마이웨이'입니다.


1959년생인 김흥국은 1985년 '창백한 꽃잎'으로 데뷔하였으며 현재 제5대 대한가수협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별명은 흥궈신, 흥켈메라고 하는데 아마도 축구를 좋아해서 아르헨티나 축구선수의 후안 로만 리켈메의 이름을 따서 지은것 같습니다.





김흥국은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로 음악가 인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밴드 이름은 '오대장성'으로 김흥국은 밴드의 드러머였다고 합니다. 


1988년 2월 15일 MBC의 인간시대 '정아의 겨울일기'편에서 김흥국은 불치병에 걸린 한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정아'라는 노래를 자작해 불러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탑깝게 정아는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후 김흥국은 상당히 컬트적인 느낌이 나는 댄스곡 "호랑나비"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 노래로 김흥국은 가요톱10에서 골든컵도 수상하게 됩니다. 이후 뛰어난 예능감으로 예능방송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인기를 모았습니다.


1989년 대한민국 가요계를 흔들어놓은 호랑나비 김흥국은 덥수룩한 코수염에 흰 양복을 입은 모습과 호랑나비 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5주 연속1위에, 10대 가수 상까지 거머쥐게 된 김흥국은 이후 방송계에서 승승장구를 하게 됩니다.







김흥국은 지금은 '예능의 신', '흥궈신'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에게는 힘겹던 10년의 무명시절이 있었습니다. 서른 살이 다 되도록 차비가 없어 걸어서 공연을 다니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합니다. 빚을 내서 음반을 냈지만 줄줄이 대중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10년 무명을 버틸 수 있던 건 오로지 어머니 덕이었다고 합니다. 홀로 6남매를 키우던 힘든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언젠가는 성공항 거야. 너는 크게 될 거야'라고 아들을 믿어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한결 같은 믿음과 사랑 덕분에 그는 기나긴 무명을 털고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김흥국은 13년차 프로 기러기 아빠라고 하는데요. 김흥국은 지난 2003년에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가족들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 학교 문제로 또다시 김포와 서울 간의 '반 기러기 생활'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김흥국은 지난 13년은 아내의 잔소리 마져 그리워질 정도로 외롭고 적막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13년의 기러기 생활로 김흥국의 삶은 확 바뀌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새 프로 살림꾼이 됐습니다. 스스로 청소, 빨래, 음식까지 혼자 다 해낸다고 합니다. 비록 혼자이지만 삭막하지 않기 위해 화초도 키우고, 집안엔 먼지 한 톨 없으며, 설거지를 쌓아두는 법도 없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조기축구를 하고, 동네 이웃들과 친목을 다진다고 합니다. 김흥국의 나이는 어느새 59세의 나이로 날로 줄어드는 머리숱으로 걱정해 가발을 착용해 보기도 하고 스스로 '셀프 수염 염색'까지 하며 자기관리에 소홀함이 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흥궈신' '예능치트키'로 불리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김흥국은 요즘 음악공연과 라디오 DJ, 예능 게스트, 대한가수협회 회장까지 부르는 곳이 많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사이버 대학 실용음악학과에 합격해 17학번 새내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흥부자'김흥국은 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즐거운 세상을 꿈꾼다고 합니다. 가수협회회장으로 원로가수들의 어려운 생활을 지원하고 장학재단도 18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무료 공연한지가 어느덧 두 달이 됐다고 합니다.


김흥국은 작고 초라한 무대도 마다하지 않고, 웃음과 노래를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고 합니다. 엉뚱하지만 사람냄새가 나는 김흥국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델계의 여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모델 송경아가 7월23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32회에 출연하여 활기찬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송경아는 신장 179.5cm의 훤칠한 키와 매력적인 마스크로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의 런웨이를 압도했던 대한민국 톱모델입니다.


송경아는 1980년 생으로 1997년 SFAA 컬렉션 진태옥쇼로 데뷔하였으며 그녀의 남편은 재미교포로 10년을 교제하다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20년째 각종 패션 잡지의 화보 촬영장에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모델은 시크하고 까다로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솔지 털털한 반전매력으로 각종 방송과 라디오에서도 섭외 1순위라고 합니다.







송경아는 지난달 22일 방송된 MBC'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화끈한 입담을 선보이며 시선을 끌었는데요. 이날 방송에서 송경아는 모델계에 군기를 없앤 일화를 공개하였습니다. 송경아는 남다른 후배 사랑을 가지고 있는데 한 번은 패션쇼 중 어떤 사람이 몰카를 찍는 게 보여 남자 목소리로 '나가!'라고 소리쳐 쫓아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송경아는 평소에는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걷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큰 키 때문에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고 합니다. 알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럼없이 대하고 편하게 동네를 누비는 소탈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델 활동만큼은 완벽주의자라고 합니다. 작년가을 출산한 초보엄마지만 출산 2개월 만에 복귀하여 변함없는 카리스마로 촬영장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날 인터뷰에서 송경아는 "19살에 데뷔헤서 나오자마자 표지도 찍고 사실 오프닝 피날레도 하고 패션계 안에서는 이미 유명한 모델이 되었어요. 키가 너무 커서 어렸을 때는 싫었거든요. 근데 그게 장점으로 된 케이스인데요. 제가 데뷔했을 때는 예쁜 모델들의 세상이었어요. 저는 다른걸로(한계)극복하려고 하다 보니 노력하게 돼서 그 부분이(사람들에게)보이게 된 거예요" 라고 밝혔습니다.







송경아는 데뷔 3년 만에 톱모델에 올라선 후 뉴욕으로 떠나 아시안 최초로 유명 청바지 브랜드 모델을 시작으로 전 세계 패션잡지를 장악, 첫 시즌 만에 쇼 37개를 서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긴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던 그녀는 인테리어, 도예, 가방공예 등 닥치는 대로 배우며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안정을 되찾게 됐고 가장 편한 공간인 집이 힐링 공간이 됐다고 합니다. 또한 남편은 그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고 아기는 모든 피로를 잊게 하는 그녀의 비타민이 되어줬다고 합니다.






남모를 시간 끝에 비로소 완성된 지금의 송경아는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콤플렉스, 나이, 편견, 수 많은 한계를 뛰어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출산 후에도 황금비율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송경아는 출산 2개월 만에 모델로 복귀함과 동시에 10년 넘게 해온 자기관리 비법인 필라테스도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패션과 관련된 직업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불어에도 도전하고, 재미삼아 그리던 가방 그림을 모아 직접 제작에 도전, 작지만 개인 브랜드 론칭까지 성공한 사업가 송경아는 이미 자신의 그림과 이야기를 담은 책(창작 일러스트 작품직 '패션모델 송경아, 뉴욕을 훔치다', '키스 미 트래블'등)을 출판한 그녀는 틈틈이 글과 그림을 정리해 다음 책을 준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여름은 아기방을 만들기 위해 감행한 이사 때문에 다시 한 번 셀프인테리어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공사현장에 매일 찾아가 진두지휘를 하고 직접 현장에서 벽돌 시멘트작업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송경아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끝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MBC일일 드라마 돌아온 복단지에서 황금봉역으로 감초연기로 사랑을 받고 있는 강성진이 16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하여 애틋한 가족사를 전한다고 합니다. 강성진은 1971년생으로 1990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를 햐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영화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로>영화배우에도 데뷔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뮤지컬 배우로도 데뷔하였으며 1997년 KBS 슈퍼탈렌트에도 입상하였습니다.  특히 강성진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달마야 놀자', '실미도' 등에 출연하며 개성있는 성격파 배우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강성진의 아내는 7살 연하의 가수 이현영입니다. 이현영은 배우 이현경의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두 사람은 친구의 소개로 만나 압구 정동 소망교회를 함께 다니며 5년간 사랑을 키워오다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강성진, 이현영부부는 지난 3월에 MBN '사돈끼리'에 양가 사돈과 함께 동반출연하여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요. 방송에서 강성진 , 이현영 부부의 둘째 딸 민영 양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맞아 양가 안사돈이 만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이현영의 친정어머니는 이들 부부가 나이가 있는데 걱정이 앞서 늦둥이를 달가와하지 않았던게 미안하기만 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는데요. 이에 강성진의 어머니는 성진이가 아이를 너무 좋아한다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보물이라고 안사돈에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강성진은 MBC 일일 연속극 '돌아온 복단지'에 철없는 남편 '황금봉'역으로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는데요. 촬영 현장과 대기실에서 틈만 나면 딸 자랑하기 바쁜 사랑꾼 아빠 강성진은 지난해 12월 세째 딸 민하가 태어나면서 민우, 민영 삼남매의 아빠로서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강성진은 그 동안 밝히지 않았던 아이들에 관한 가슴 아픈 사연을 고백하였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큰 아들 민우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는 마음의 병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MBC '아빠 어디가' 출연자 사전 미팅 때 제작진의 질문에 아들 민우가 1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은 결과 아들 민우는 가족들과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낯을 심하게 가리며 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강성진 또한 어렸을 적에 낯가림이 심한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성진은 틈만 나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성진은 알고보니까 화려한 연예인 가문 '스타 가계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호성과 함께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강성진은 이후 '실미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등에 출연하며 지난 27년간 배우로 꾸준히 활동 하였습니다. 아내 가수 출신의 이현영이며, 아내의 친 언니는 탤런트 이현경, 그 남편은 뮤지컬 배우 민영기, 조카는 탤런트 강별, 강별의 엄마 아빠(누나 부부)는 과거에 영화배우였고 매형의 친 동생이 강우석 감독이라고 합니다.





이 날 촬영에서는 걸 그룹 출신 아내 이현영이 친 언니인 탤런트 이현경이 방문했는데요, 이들의 결혼에 언니 이현경이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강성진은 방송에서 2007년 첫 아이인 민우가 태어난 다음 날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 보내야만 핸던 사연을 공개하면서 오열을 해서 안타까움을 갖게 하였는데요. 그것은 장례식장에서 축하와 위로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후 반찬가게 등 사업에 손을 댔는데 사기와 투자 실패로 큰 손해를 보고 소속사 또한 망하는 바람에 몇 년간 공백기를 갖게 되어 생활고로 시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그는 가장으로서 무게가 무거운 만큼 연기 역시 더욱 절실하다고 하는데요. 그는 비록 차 안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워도 연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 세 아이를 위해서 다시금 일어선 아빠 김성진의 모습은 7월16일 MBC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6월25일 오늘은 한국전쟁 67주년을 맞이하는 날인데요.  나라를 지키기위해 숨져간 국군용사들과 한국전쟁에 희생된 유엔군들의 명복을 빕니다.


보컬여제라고 불리는 자우림의 김윤아가 25일 MBC 사람이좋다 228회에 출연하여 가수생활과 워킹 맘으로 살아가는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10년 째 '막돼먹은 영애 씨'에서 '영애 아빠'역의 감초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송민형의 파란만장한 배우의 삶을 공개한다고 합니다.






자우림의 김윤아는 작곡, 작사, 편곡, 가창력 등 모든 음악적인 감각을 가진 레전드 가수라할 수 있는데요. 김윤아는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에서 활동하다가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1997년 '꽃을 든 남자'OST 'Hey Hey Hey'로 데뷔하였습니다. 이때 자우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우림은 1997년 데뷔 이후 20년간 단 한명의 교체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자우림은 'Hey Hey Hey', '매직카펫라이드', '일탈', '하하하쏭'등 발표하는 곡마다 큰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대표밴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남성보컬들이 즐비한 밴드 사이에서 보기 드문 록 밴드의 여성보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김윤아는 결혼, 육아, 출산 등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좌우림 활동 외에 4개의 솔로앨범을 내며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한때 김윤아는 자우림 9집 앨범 활동을 마친 후 번아웃증후군(소진증후군)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1997년 자우림으로 데뷔한 후 오랜 활동으로 피로감과 회의감도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10개월간의 휴식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김윤아는 지난해 6년만에 솔로 4집 앨범 '타인의 고통'을 발매하였는데요. 4집 앨범에는 '강'. '유리', '키리애', '독', '은지, '꿈', '타인의 고통', '안녕', '다 지나간디' 등 총 9곡이 수록됐습니다.


타이틀곡인 '꿈'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김윤아는 스스로를 뉴스중독자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대중문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걸 놓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윤아는 11살의 민재의 엄마이기도 한데요. 김윤아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모습은 여느 엄마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래도 직장 워킹엄마보다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김윤아가 음악과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VJ출신 치과의사인 남편 김형규 덕이었다고 합니다.






'주몽', '태왕사신기', '각시탈' 등 다양한 작품뿐만 아니라 10년 쩨 '막돼먹은 영애 씨'에서 '영애 아빠'역의 감초연기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 송민령은 1960년대부터 연기를 해 온 아역 1세대라고 합니다. 그는 초혼에 실패를 하고 미국으로 떠나갑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 LA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시트콤에 출연하며 다시 연기의 꿈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에서 마흔이 넘어 맡바닥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작은 역활도 마지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고정역활을 맡게 되었습니다.





송민형은 미국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도 송민형이 연기를 위해 미국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갈때 말없이 같이 따라가 주었습니다. 생각처럼 일이 잘풀리지 않고 오랫동안 무명생활 벗어날 수 없었던 송민형은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식당을 크게 열지만 시패하고 빚더미에 오르게 됩니다. 고통 가운데 자살시도도 하였는데 아내가 그의 마음을 돌려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결단으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이번에 간암선고를 받게 됩니다.  2014년까지 세번의 간암 선고를 받았는데 그는 그러한 몸에도 불구하고 연기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복중에 제일 좋은 복은 말복이라며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어 복이라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가수 성진우가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한다고 합니다. 정말 반가운 얼굴이지요 성진우는 '포기하지마'로 큰 인기를 끈 가수입니다. 6월11일 방송하는 MBC'사람이 좋다' 226회에서는 '끝까지 간다'라는 부제로 성진우의 인생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성진우는 지난 1995년 '포기하지마' 노래 하나로 가요계 신인상을 휩쓸며 화려한 가수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후 어찌된 일인지 댄스가수 타이틀을 버리고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하였습니다. 성진우는 비록 방송에는 많이 출연하지 않고 있지만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성진우는 전국방방곡곡을 누리며 밤업소와 주민센터 행사에 주부 노래교실까지 자신을 불러주는 곳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고 합니다. 성진우는 그동안 10년의 공백기와 방황 끝에 트로트 가수를 선택해 트로트 가수 8년차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성진우는 다시 한 번 화려했던 지난날의 전성기를 꿈꾸며 활기차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합니다. 댄스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면서 모든걸 새롭게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보컬트레이닝에서 기초 트로트 창법을 배우고, 판소리 명인에게도 창법 개인교습도 받았다고 합니다.





성진우는 지금 상황이 매우 안좋은 것 같아 보였는데요. 바닥에서부터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고백하였는데요. 현재 48살로 그동안 노총각으로 알려졌었는데 실은 유부남이었다고 갑작스레 고백을 하였습니다.


성진우는 4년전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과 결혼사진도 찍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결혼식을 계획할 무렵에 아내가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 11주만에 유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정도 회복될 무렵에는 아내의 소장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대수술을 받게 됩니다, 







아내가 완치판정을 받으려면 5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결과를 받아든 성진우는 병상에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혼인신고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동안 기회가 마땅치 않아 세상에 알리지 못해 늘 아내에게 미안했다는 성진우는 이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용기를 내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습니다.


성진우의 프로필은 1970년생으로 1994년 태진아를 만나 진아기획에 영입되어 1집 <Virgin Fight>를 발표하고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습니다. <Virgin Fight>의 타이틀 곡 '포기하지마'는 주영훈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데뷔와 동시에 성진우를 스타덤에 올린 곡이 됩니다. 대표곡으로 '포기하지마', '애인 만들기', '너의 예기를', '돌아보지마', '딱이야', '내가 첨는다', '달고 쓰고 짜고'등이 있습니다.






성진우는 지난달 문화일보 보도를 통해서도 근황을 알렸는데요. 성진우는 4년전 이미 혼인신고를 하고 지금은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고 있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성진우의 아내는 네 살 어린 일반인 배모씨로 4년 전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윈 성진우는 아내와 장모, 처이모 등과 넷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을 약속한 후 혼인신고를 해 법적인 부부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결혼을 치르지 못한 것은 아내의 소장에서 6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 큰 수술을 받게 되면서 결혼을 치를 수 없게 됐습니다.. 재발위험이 있어 6개월마다 검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성진우는 아내의 곁에 지켜서 돌보고 있는 중입니다.


성진우는 인터뷰에서 23년간 노래를 불러왔는데 최근에 와서야 멋을 빼고 맛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하면서 어떤 무대보다 얼마나 무대에서 즐겼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제 성진우는 신인의 마음으로 트로트가수로 과거의 인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