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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전기는 단 몇 분도 없다면 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우리에게  이 소중한 전기를 쓸수 있도록 해준 발명가가 바로 발명왕인 에디슨과 과학천재인 니콜라 테슬라입니다. 이 분들 덕분에 우리는 마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당연하게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둘다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을 가자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 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요. 에디슨은 평생을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파 발명가인 반면 테슬라는 반대로 타고난 영감이 뛰어난 천재 과학자였습니다.






에디슨은 직류 전류 시스템의 창시자이며 대변자였고. 테슬라는 교류 전력 시스템을 창시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에디슨 전기를 읽고 잘 아는 인물이지만 테슬라는 유독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지만 과학계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불굴의 의지로 빛의 혁명이라 불리는 백열전구를 발명했으며 직류전기와 1,100여개의 발명품을 개발하였습니다.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800여 개의 발명품과 272개의 특허를 획득한 위대한 발명가입니다. 특히 교류전기로 빛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서 지금까지 비운의 천재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전화회사 프랑스지사에 일하고 있었는데 테슬라의 재능을 알아본 현지 직원이 에디슨에게 데려와 테슬라와 에디슨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미국은 에디슨이 만든 직류 발전소가 있었지만 잦은 고장과 화재가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교류기술로 발전기를 재설계할 것을 제안했는데 사업가 에디슨은 이 제안을 혼쾌히 수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완료 후 두 사람은 영원히 갈라서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테슬라는 에디슨이 약속했던 성공 보수 5만달러를 주지 않아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하고 에디슨은 테슬라가 5만달러에 이 기술을 살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했다고 주장해서 결국 이들은 안탑깝게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정말 더 위대한 발명품들이 나왔을지도 모르는데요.






1887년 자신의 이름을 건 전기회사를 차린 테슬라는 교류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학계와 산업계에 퍼뜨려 나갔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발전소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며 테슬라와 계약을 체결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에 맞서 전압이 바꾸는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기로 죽인 동물을 담은 전단지를 살포하고 특허권을 놓고 웨스팅하우스와 소송을 벌였습니다. 또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을 집행하자며 여론몰이를 하고 실제 사형수를 상대로 집행을 강행한 사건은 당시 현지 언론 사이에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과 맞소송을 벌이며 교류의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결국 1890년대 들어 테슬라의 교류를 적용한 수력발전소가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들어서면서 이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에디슨은 지금껏 쌓아온 명성에 걸맞지 않게 치졸하고 야비하게 테슬라를 괴롭혀왔지만 효율성과 뛰어난 성능을 입증한 교류 발전시스템의 승리로 돌아갔으며 비효율적인 에디슨의 직류발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갔습니다.






교류 발전의 승리로 명성을 얻은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무선 통신을 개발하였습니다. 테슬라는 지구 정상파를 발견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무선 통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는데요. 하지만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터빈과 다른계획들의 연구에 착수해 단상 유도 전동기를 비롯한 6개의 발명품을 발표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테슬라의 말년에 불행하였는데요. 결벽증과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그의 과학 이론과 기술이 학계에 받아들이지 않아 그는 미친 과학자로 따돌림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수백 건이 넘는 발명과 교류 발전이라는 세상을 뒤바꿀 발명을 하고도 이를 상업화에서 돈을 버는데 관심이 없었던 테슬라는 가난으로 고통받으며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