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일 가요무대에서는 4월신청곡으로 무대를 꾸몄는데요. 이날 출연 가수들은 문희옥이 첫 번째 무대에 나와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부릅니다. 이어서 박일남은 자신의 노래인 갈대의 순정, 또 우연이는 이미자의 아씨, 소명

은 자신의 노래 빠이 빠이야를, 명창 이호연은 매화타령을, 강승모는 자신의 노래 무정블루스를 부릅니다.


박우철은 본인의 노래인 연모를, 이정희도 자신의 노래 바야바를, 김경남은 최무룡의 외나무 다리, 신미래는 박신

자의 소녀의 꿈, 소리새는 자신의 노래 그대 그리고 나, 김국환은 오랜만에 나와서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을, 조은성

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장믾는 나훈아의 갈무리, 이미배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이자연은 은방울자매의 마

포종점을 부르며 향수에 젖는 노래들을 부르게 됩니다.





백설희-봄날은 간다


장사익-봄날은 간다




애닯은 사연이 담긴 노래들이 많은데요. 간단히 노래에 담긴 사연을 살펴보도록 할게요. 먼저 문희옥이 부르게 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한국 가요계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곡이지요. 첫 소절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

리더라로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는 1953년 가수 백설희가 발표한 대중가요입니다.


손로원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했으며, 한국전쟁 시절 너무 환해서 더욱 슬픈 봄날의 역설이 전쟁에 시달린 사

람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보여주었기에 이내 공감을 노래로 평가 받았습니다.





이 곡은 이미자, 배호, 조용필, 나훈아, 한영애 등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른 백설희

는 1943년 조선악극단 단원으로 연극배우 겸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1943~2010년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본명은 김

희숙 가족관계는 남편 황해(본명: 전홍구), 자녀4남1녀 전영록, 정진영, 손녀전보람(티아라), 전우람(디유닛), 손자 

전유빈등이 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봄날은 간다,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 물새우는 강언덕, 샌프란시스코, 가는 봄 오는 봄, 물새 우는 강

언덕, 칼멘 야곡, 하늘의 황금마차 등이 있습니다. '봄날은 간다' 이 한 곡에는 봄과 인생의 비밀이 다 들어가 있습

니다. 단순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풍경이 겹쳐져 있습니다.






이 노래는 조용필, 장사익, 배호, 한영애, 김정호 등 내노라하는 세상의 명창이 한 번씩 다 노래했습니다. 백설희

의 원곡부터, 이후의 모든 리메이크마다 가수들의 설움이 다릅니다.


조용필은 슬픔을 단단히 끌어들이고, 장사익은 토해내고, 배호는 정제된 슬픔을 한영애는 끈적하고 퇴폐미 넘치

는 슬픔을 보여줍니다. 김정호는 처절합니다. 이 곡은 가수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또 한국

가요사가 얻은 최고의 절창입니다. 한편 '봄날은 간다'는 시 전문지 조사에서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 1위

에 뽑혔습니다.






조은성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을 불렀는데요. 조미미는 1945년생으로 1963년  '전국남녀가요 콩쿠르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1964년 동아방송 등에 출연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하였습니다.


1965년 '떠나온 목포항'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하였으며, 1969년 '여자의 꿈', 1970년 '바다가 육지라면'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최고 트로트 스타로 '서산 갯마을', '서귀포를

아시나요', '울어라 열풍아', '눈물의 연평도', '단골손님', '알고 계세요', '당신은 철새'등의 히트곡이 있습니다.




조미미-바다가 육지라면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1960년대 중반 대중가요계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조미미씨 등 네 명의 가수가 주도

했다"며 특히 조미미씨는 후덕한 외모와 맑은 목소리 등으로 이미자를 뒤잇는 인기 여가수로 각광받았다"고 평가

했습니다. 노래를 특히 잘했고, 남진씨와 함께 호남 지역을 대표하던 스타였다"고 말했습니다.


조미미는 2012년 간암으로 별세를 하였습니다.


우연이가 부른 이미자의 아씨는 1970년 TBC TV일일 연속극과 1971년 영화 주제가로 이미자가 불렀습니다. 아씨의

가사는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말 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여기던가 저기던가/복사꽃 곱게 피어 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섧구나 2절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적에/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

던 길/어디선가 저만치서/뻐꾹새 구슬피 울어 대던 길/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1970년 TV드라마의 이정표를 세운 TBC드라마 아씨는 주요인물로 김세윤, 김희준, 사미자, 여운계가 열연했으며 이

미자가 부른 아씨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 김희진은 대한민족 전형적인 여인상을 엿볼수 있었

습니다.


1970년 동양방송(TBC)의 일일드라마 아씨는 임희재 극본 고성원 연출로 드라마가 시작됐습니다. 시집오기 전, 마릉

의 아들 수만에게 쫓기다 노리개를 잊어버리고 부잣집 아들 긍재에게 시집오지만, 철없는 신랑, 노망기 든 할머니,

시아버지가 재혼한 통지기딸, 남편의 모진 학대 속에서도 조선여인의 정절과 인내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이미자는 1941년생으로 1958년 열아홉순정으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정더로 수많은 노래를 불렀는데요. 대표곡으로는 서울의 아가씨, 동백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황포돛대, 빙점, 여자

의 일생, 기러기 아빠, 아씨, 못 잊을 당신, 여로, 낭주골 처녀, 정든 섬, 안 오실까봐, 모정, 노래는 나의 인생 등이 있

습니다.



이미자-아씨


특히 1964년 발표한 동백아가씨는 10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가장 인기있는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일수교정상화의 정치적 영향을 받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가족으로 첫째 딸 정재은은 19

81년 고봉산 작곡가의 곡인 '항구'로 데뷔해 엄마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미배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불렀는데요. 윤심덕은 1926년 서른살에 나이로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보도가 되어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많은 의혹들이 포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그녀의 대표곡인 사의찬미가 유명합니다. 윤심덕은 1897년~1926년의 생애

를 살았는데 화가 나혜석과 함께 1920년대의 신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기주와 함께 한국 최초의 소

프라노였습니다.






윤심덕은 조선총독부의 관비유학생으로 발탁되어, 일본에 성악을 공부하였습니다. 유학생시절인 1921년 김우진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극작가인 김우진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불륜인 것입니다.


그녀는 1926년 사의찬미를 취입했습니다. 이 곡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왈츠 '다뉴브강의 잔물결'의 주선율에 별

도의 가사를 덧붙힌 번안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의찬미는 원래 녹음하고자 했던 곡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노래를

녹음하던 중에 그녀가 갑자기 이 노래를 녹음하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어마

어마한 1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가 히트가 된 배경은 그녀의 죽음에 의한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이노래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듯 죽음을

찬미하는 우울한 노래입니다. 윤심덕은 일본에서 음반취입을 하는동안 김우진을 만났는데 갑자기 둘은 8월3일 부

산행 연락선에 탑승하였습니다. 그리고 1926년 8월4일 배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시 조선 최초의 정사사건이었기에 신문에서 대서특필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8월3일 김우

진과 윤심덕이 일본에서 같은 배를 탔다는 것과 8월4일 새벽 대마도를 지날 무렵, 선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

했고 사람은 없고 가방만 있었다는 것, 이후 승객명부를 대조해서 확인해보니 김우진과 윤심덕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참으로 미스테리한 사건입니다.


또 유언장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이 자살했다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없었고 시체 또한 발견되지 않았습니

다. 그냥 언론이 미화시키 듯 두 사람이 껴안고 바다에 뛰어내렸다라는 단정적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윤심덕-사의찬미


김정호-사의찬미


이들은 불륜이었지만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이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꼭 사랑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이었던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 사건으로 연극과 영화도 많이 제작이 되었는데요. 최초의 영화화는 1969년 안현철 감독의

'윤심덕'1969년 작품이고 신성일, 문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또 1991년에는 임성민과 장미희 주연으로 '사의 찬미'

라는 영화의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습니다. 윤심덕을 맡은 장미희는 이 직품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김우진을 

맡은 임성민은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